다빈치가 되고 싶었던 영재소년
그냥 쉽게 말하면 이렇다.
나는 디자인이고 엔지니어링고 공학이고 구분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나는 그런걸 구분짓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냥 다양한 의미에서 좋은 물건 만들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만이다.
물론 좋아한다는 것이 소유하고 싶는 것과 동일시 되어야 하겠지만.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오늘은 그 순간에 대한 쓸데없는 고찰이다.
오늘도 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아니다 더 오래전부터의 얘기다.
나의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신다. 소위 서양화.
그리고 나는 유치원 시절부터 어머님께 그림을 매주 배웠다.
기억나는 몇 장면이 있다. 크레파스를 초에 녹여가며 그린 그림이라든지 그런 것들.
그리고 어머님은 레고를 그렇게 많이 사주셨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컴퓨터랑 연동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찾아보니 레고 테크닉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4학년이었는지 5학년이었는지 나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이공계 영재교육프로그램 같은 것에 소속되게 되어 각종 방과후 과학실험 같은 것을 했던 것 같다.
중학교가 되어서는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고 계속되었던 영재교육프로그램에서 수학대신 이런것을 해보겠냐는 제안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토요일에 한번씩 가서 교육도 받고 방학엔 캠프같은 것도 있었다. 간단한 게임도 만들어 봤던 것 같고, 각종 알고리즘과 언어 교육을 받았다. 간단한 멀티플레이 게임도 만들어봤던 것 같다. 물론 게임은 더 많이 했다. 디아블로2에 목숨을 걸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 원서를 두장을 썼다. 포항공대니 어디 의대니까지하면 4장이다.
서울대 기계항공 공학부.
서울대 건축학과.
원서는 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던 것이 선명히 기억난다.
여담이지만 포항공대는 물리학과를 썼다…
재수를 열심히 했는지 모든 입시에 붙었으니..
아마 서울대를 떨어졌다면 난 지금 미쳐있지 않았을까한다.
아마 지금의 나를 설명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 하는 순간이 이 부분인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건축공학도 아니고 건축과와 기계항공공학을 고민한 사람이 많진 않을 것이니까.
그리고 이 때의 고민이 나를 계속해서 쫓아다닌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공학과 디자인 모두를 사랑했다.”
이렇게 살아온 연유로
디자인인지 공학인지 나에게는 구분되지 않는 한가지다.
그것이 당신이 많은 잘만들어진 물건에서 그 두가지를 구분하지 힘든 것처럼.
그리고 아래 그림은
모나리자를 그리고, 비행기의 개념을 생각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형의 인체비례도다.